10. 죽음의 계보, 생명의 소망과 헛된 소망 (창세기 5:1-32)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모든 사람이 죽게 됩니다. 그러나, 에녹은 죽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비록 밝히 말씀하지는 않으셨지만 생명의 길이 있었습니다.
본문 읽기: 창세기 5:1 - 32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때에 하나님의 ( )대로 지으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아담은 자기의 ( )을 닮은 아들을 낳고 셋이라 이름하였습니다.
에녹은 아담의 몇 대손인가요?
에녹은 어떻게 죽지 않았나요? (24절)
아담의 후손들은 생존을 위해 수고해야 했으며 그리고 그러한 삶의 마지막은 죽음이었습니다. 그래서 라맥은 자신의 아들의 이름을 ( )라 하며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 )을 저주하시므로 ( )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 ) 하리라" 했습니다.
적용을 위한 묵상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지고 복을 받은 존재였지만 죄를 지음으로 죽게 됨을 봅니다.
그러나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악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할때 그는 죽지 않고 하나님께로 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약속하지 아니하셨음에도 말이죠.
이것이 살수 있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라맥의 이야기는 헛된 소망을 보여줍니다.
그는 수고로운 삶에서 벗어나고자 '안식'이라는 의미를 가진 노아라는 이름을 아들에게 붙여줍니다. 그런데 그가 하는 말을 보면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셨다 하여 그런 고난의 원인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아담의 죄요 자신들의 죄가 원인이라는 것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아담의 죄에도 불구하고 아담을 저주하지 않고 땅을 저주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은혜로 말미암아 죄인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그러한 상황(은혜의 상황. 당장 죽어야 하지만 살려주시고, 인간대신 땅이 저주를 받은 상황)을 하나님을 불평하는 근거로 사용합니다.
자신들의 조상 에녹의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생명의 길(주님과 동행하는)을 외면하고, 자신의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고, 헛된 소망(막연히 안위를 바람)을 붙잡습니다. 이들이 안위를 소망하며 이름하였던 노아의 시대에 자신들의 죄로 인해서 홍수가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