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제2사랑계명을 어김: 과도한 환대, 폭력적 적대감, 그리고 이기심 (사사기 19:1 – 30)
사사기에서 서술된 이스라엘의 반복되는 죄악(특히 우상숭배)에 대한 결론적 이야기로 사사기 저자는 레위인과 관련된 두가지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결말은 영적 리더십의 실패가 이스라엘의 지속적인 우상 숭배와 죄악에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암시합니다. 영적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의 통치가 공동체 가운데 나타나지 않았고 이로 인해서 사람들은 이스라엘에 왕이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사실은 하나님의 왕되심과 그의 통치방식을 거부한 것인데 말입니다.
Q1. 한 레위인의 첩이 ( )에 있는 자기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네 달 후, 그녀의 남편이 찾아왔으며 장인은 그를 환영했습니다. 장인은 그를 설득하고 강권하여 며칠을 더 머물도록 했습니다. ( )째 날 오후, 그 레위인은 마침내 결심하고 첩과 함께 길을 떠났습니다. ( )에 가까워지자 레위인은 그곳이 이방인의 도시이기 때문에 머물기를 거부하고, 더 나아가 ( )라는 베냐민 성읍에 머물기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그 성읍에서 아무도 그들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 ) 출신으로서 그곳에 우거하던 한 노인이 그들을 자신의 집으로 안내했습니다.
한 레위인의 첩이 ( 베들레헴 )에 있는 자기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네 달 후, 그녀의 남편이 찾아왔으며 장인은 그를 환영했습니다. 장인은 그를 설득하고 강권하여 며칠을 더 머물도록 했습니다. ( 다섯 )째 날 오후, 그 레위인은 마침내 결심하고 첩과 함께 길을 떠났습니다. ( 여부스(예루살렘) )에 가까워지자 레위인은 그곳이 이방인의 도시이기 때문에 머물기를 거부하고, 더 나아가 ( 기브아 )라는 베냐민 성읍에 머물기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그 성읍에서 아무도 그들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 에브라임 산지 ) 출신으로서 그곳에 우거하던 한 노인이 그들을 자신의 집으로 안내했습니다.
베들레헴은 사사기의 마지막 사건에서 언급되며 룻기의 중심 배경이 됩니다. 이것은 단순한 우연인가요, 아니면 다른 메시지가 있을까요?
Q2. 4-9절은 레위인의 우유부단함을 나타냅니다. 그의 장인이 그를 설득하기 위해 한 말 속에 나타난 그의 우유부단함의 이유가 무엇일까요? (5,6,8,9절)
그는 개인적인 즐거움과 만족을 위해 머물렀습니다. 환대에 대한 그의 탐닉이 집으로 돌아가려는 목적에서 그를 산만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 "먹고 힘을 내십시오. 그리고 오후까지 기다리십시오"(5절).
• "이제 하룻밤 더 머물며 즐기십시오"(6절).
• "제발, 오늘 밤만 더 머무르십시오. 그러면 마음이 즐거울 것입니다"(9절).
17-18장의 레위인은 가난 때문에 떠돌이가 되었는데 이는 십일조를 바쳐 레위인의 생계를 도우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긴 것입니다. 그는 절박한 상황으로 인해 우상 숭배의 제사장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스라엘을 거룩한 백성이 되도록 섬겨야 하는 사명을 받은 레위인이 오히려 우상숭배를 조장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반면, 19장의 레위인은 부유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소명보다는 쾌락과 즐거움에 탐닉하고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었습니다
Q3. 왜 그들은 여부스에서 머물지 않기로 결정했나요?
여부스는 가나안인의 도시였습니다(다윗이 점령하기 전).
그들은 이스라엘 마을에서 선을 기대했지만(12절), 역사상 전례 없는 끔찍한 악을 경험했습니다(30절).
Q4. 22-30절의 사건은 충격적이고 매우 당혹스럽습니다. 그들은 여행자를 환대하기는 커녕 그를 해하겠다고 합니다. 집 주인은 자신의 ( )을 보호하려고 다른 여성들을 내어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레위인은 자신의 첩을 그들에게 넘겨줬습니다. 그녀는 ( )에 의해 넘겨져 밤새 강간당한 후, ( )이 머물고 있는 집으로 돌아와 문지방에서 죽었습니다. 아침이 되자, 그 레위인은 아무일 없었다는 듯 일어나 그녀의 시신을 ( )에 싣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그녀의 시신을 잘라서 이스라엘 전역에 보냈으며, 사람들은 “( )"라고 말하며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22-30절의 사건은 충격적이고 매우 당혹스럽습니다. 그들은 여행자를 환대하기는 커녕 그를 해하겠다고 합니다. 집 주인은 자신의 ( 손님 )을 보호하려고 다른 여성들을 내어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레위인은 자신의 첩을 그들에게 넘겨줬습니다. 그녀는 ( 자신의 남편 )에 의해 넘겨져 밤새 강간당한 후, ( 자기의 주인 )이 머물고 있는 집으로 돌아와 문지방에서 죽었습니다. 아침이 되자, 그 레위인은 아무일 없었다는 듯 일어나 그녀의 시신을 ( 나귀 )에 싣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그녀의 시신을 잘라서 이스라엘 전역에 보냈으며, 사람들은 “( 오늘까지 이런일을 일어나지고 보지도 못하였도다 )"라고 말하며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사사기 17-18장은 첫 번째 계명, 즉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어기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19-21장은 두 번째 계명, 즉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지 못한 모습을 반영합니다.
19장은 가정내에서 억압받고 있던 한 여인, 어떤 첩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1-2절). 그녀의 아버지의 지나치고 강박적인 환대(5-10절)는 불편한 느낌을 줍니다. 그들은 환대를 기대하고 여부스 대신 기브아를 선택했으나(11-15절), 한 노인이 그들을 맞아들이기전까지 아무도 그들을 맞아들이지 않았습니다(16-21절). 그날 밤, 도시의 남자들은 손님을 내놓으라고 요구했습니다(22절). "집 주인"과 "내 집에 온” 이라는 표현이 언급됩니다. 19장 전체 이야기를 관통하는 주제는 나그네 환대인데 그들은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계명의 준수가 아니라 단지 '문화적 의무'의 수준에서 나그네를 환대하려 했기에 자신의 가족은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한 오류의 근본이유가 모든 해석과 가치관의 중심에 하나님이 아니라 '내' 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레위인의 극단적인 이기적 행동을 통해서 말입니다.
성읍 사람들의 악한 행동은 동성애적 욕망에서 비롯되었다기 보다는 나그네나 외부인을 향한 적대감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집 주인이 그들의 요구를 거절한 것은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라기 보다는 손님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나그네 환대는 신성한 의무로 여겨졌기에 종종 극단적으로까지 나아갔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장인의 지나친 환대와 집 주인의 충격적인 제안(처녀 딸과 첩을 내어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행위들은 사회적 의무 (혹은 계명의 문자적 준수)를 진정한 배려보다 우선시한 자기 중심적 해석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25-28절에서 첩은 남편에 의해 이미 학대를 받았으며, 무리에게 넘겨지기 전부터 재산처럼 다뤄졌습니다. 성경은 그의 행동을 명시적으로 비난하지 않지만, 이야기의 속도를 늦춰(26-27절) 독자들이 그 참혹함을 성찰하게 합니다. 직접적인 언급이 없는 것이 더 강력한 심판을 암시합니다.
레위인은 그녀의 시신을 수습하며 감정을 보이지 않았고, 시신을 훼손하여 이스라엘 전역에 보냈습니다. 그의 메시지—"내 소유를 파괴당했다"—는 그녀를 하나의 물건으로 격하시켰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러한 끔찍한 패키지를 받고 분노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그들이 그 여인에게 행해진 악행에 분노한 것인지, 레위인의 재산(?) 손실에 분노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물음을 던집니다
장인의 과도한 환대는 레위인의 상황에 대한 배려가 아닌, 오히려 그를 짜증나게 했습니다. 또한 노인이 무리에게 자신의 딸을 제안한 것은 ‘사랑해야 할 이웃이 누구인가’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보여줍니다. 무리는 외부인을 향한 그들의 힘과 지배를 과시하고 싶어 했습니다. 이는 사랑의 계명을 완전히 거스르는 행위였습니다. 과도한 환대와 극단적인 적대감은 공통적으로 자기 중심성을 근원으로 하며, 이는 레위인의 행동에서 특별히 드러납니다.
이런 도덕적 붕괴와 폭력의 중심에는 레위인의 타락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 만족을 위해 우유부단했고, (영적) 책임을 저버렸으며, 자기 중심성으로 인해 왜곡된 인식과 판단을 내렸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모두는, 폭도를 제외하고는, 스스로 옳다고 여긴 일을 추구했지만, 그 중심에는 자기 자신이 있었기에 그들의 행위들은 선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여호와를 왕으로 모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사기의 마지막 장면에서 여호와의 택한 민족 이스라엘은 소돔과 고모라를 닮아갔음을 보였습니다. 심지어 여호와께서 몰아내셨던 가나안인들보다도 더 부패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러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신의 마음과 삶 속에 누구를 왕으로 모시고 있습니까? 가족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합니까? 편안한 삶과 인생의 여유를 즐기느라 하나님 나라를 향한 결단을 주저하십니까? 본문과 같은 상황에서 자기 희생보다는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본인의 이익에 집착하십니까?
자기를 부인하고 여호와를 왕으로 모시어 그분의 길을 따르십시오. 자기 부인이 없이는 어떤 계명도 온전히 지킬수 없으며 복음의 진리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