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암몬에 대해 승리했으나 비극적인 결말을 맞은 입다 (사사기 11:29 – 40)
전쟁에 나가기 전에, 입다는 여호와께서 승리를 주시면 사람을 희생 제물로 바치겠다고 서원했습니다.
질문 1. 왜 입다가 이런 서원을 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는 희생 제물 서원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을 도우시기를 원했습니다.
입다가 길르앗의 지도자들과 암몬 왕과 논쟁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그의 논리적 정연함, 자신의 서원을 엄격하게 지키고자 하는 모습, 12장에서 에브라임 사람들을 가혹하게 대하는 모습등은 그의 성격을 잘 보여줍니다. 그의 세계관은 공정함과 규칙을 중시했지만, 신뢰와 은혜의 개념이 부족했습니다.
입다는 하나님께서 이방 신들처럼 제물—특히 인신 제물—에 기뻐하실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겸손하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기 보다는 제물을 통해서 하나님과 거래(극단적으로 말하자면)하려고 했습니다. 어떤 서원이나 제물 없이도 그에게 승리를 주실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과연” “누구든지”이라는 표현들은 제물을 통해서 하나님을 압박하여 자신을 도울 수 밖에 없도록 하려는 입다의 의지가 읽힙니다. 특히 인신제물은 가장 절박한 상황에서 자신의 신들에게 올려졌던 가나안의 종교풍습과도 일치합니다. 비슷한 사건이 열왕기하 3장 26-27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과의 격렬한 전투 중, 모압 왕 메사는 절박한 심정으로 자신의 맏아들을 성벽 위에서 번제로 희생시켰고, 이 충격적인 행위에 이스라엘은 퇴각했습니다.
질문 2. 입다의 딸이 아버지의 서원을 들었을 때, 그녀는 자신을 내어주었습니다. 그녀는 말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여호와를 향하여 ( )을 여셨으니 아버지의 ( )대로 내게 행하소서. 이는 여호와께서 아버지를 ( ) 원수를 갚으셨음으니이다”. 그리고 그녀는 덧붙였습니다. “제가 두달 동안 ( )로 죽음을 애도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세요.”
입다의 딸이 아버지의 서원을 들었을 때, 그녀는 자신을 내어주었습니다. 그녀는 말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여호와를 향하여 ( 입 )을 여셨으니 아버지의 ( 말씀 )대로 내게 행하소서. 이는 여호와께서 아버지를 ( 위하여 ) 원수를 갚으셨음으니이다”. 그리고 그녀는 덧붙였습니다. “제가 두달 동안 ( 처녀 )로 죽음을 애도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세요.”
그들은 여호와께 나아감에 있어서 상호 작용의 관계로 이해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선행이나 악행에 따라 복이나 벌을 내리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있으면 우리는 우리의 맹세에 얽매이게 됩니다. (그렇다고 맹세를 가벼이 여겨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여호와께서는 제물을 받으셨으면 복을 주셔야 하는 의무에 매이게 됩니다. 이러한 시각은 우리와 여호와 모두가 진정으로 자유롭지 않다는 오해를 낳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약속에 신실하시지만, 그 약속에 묶이시지 않으며—우리에게도 그러한 자유를 원하십니다.
입다가 승리하고 돌아왔을 때, 여호와께서 그의 딸을 희생하기를 원하셨을까요? 만약 입다가 이방신들의 주된 행동방식인 상호작용을 넘어서는 인격적 하나님의 위대함과 선하심을 이해했더라면, 그는 레위기 27장에 나와 있는 대로 동물 제물을 통해 그녀를 속량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처녀로 죽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처녀로 죽는 것은 비극으로 여겨졌습니다. 이는 자손을 남기지 못하고 결혼과 출산의 중요한 역할을 놓친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자녀를 낳는 것은 정체성과 안정성의 중심이었고, 자녀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여겨졌습니다.
입다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사용하신 용맹한 리더였지만, 그의 하나님에 대한 이해는 상호적 하나님에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단지 인간의 행위와 도덕의 논리에 따라 행동하시는 분으로 이해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익숙하지 않았던 입다는 (그의 삶의 환경을 생각해보십시오) 자비로운 해결책을 구하지 않고, 비극적인 서원에 스스로를 얽어맸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지식이 부족했던 것이 그의 개인적인 비극을 초래했습니다—그는 나라를 구했지만 가족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39-40절은 이 사건이 비극적인 것임을 강조합니다. 입다의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의 중심에 그들의 하나님을 깊이 오해한 무지가 있었음을 드러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저자는 히11장에서 그의 믿음의 결단을 칭찬하고 있음에 주목하십시오. 우리의 부족한 이해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을 전심으로 좇을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그 마음을 받아주시며 우리의 믿음을 칭찬해주십니다.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얼마나 아는가보다 하나님께 얼마나 신실한가입니다. 한편으로, 신실함은 하나님께 대한 지식을 얻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