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건물을 보지 말고 시대의 징조를 보라 (막 13:1 – 23)

성전에서의 종교지도자들과의 논쟁이후에 예수님은 성전 맞은편 감람산에 앉으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웅장하고 멋진 건물에 현혹될 것이 아니라 마지막때의 징조를 주목하라고 말씀하십니다. 

👉 마가복음 13:1 - 23

1. 제자들이 아름다운 (         ) 건물을 찬양할 때 예수님은 그 건물이 완전히 파괴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때의 (        )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성전, 징조


2. 마지막이 다가옴에 있어서 예수님은 세단계로 말씀하십니다 (3-27).  재난의 시작(    ~    절), 멸망의 가증한 것의 시기 (    ~    절), 인자의 오심 (    ~    절)입니다.

3-13, 14-23, 24-27


3. 우리는 상황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재난의 시작의 시기에 우리는 (        ) 가운데서도 모든 민족에게 (        )을 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교회(가시적 교회)의 강단에 우상숭배가 횡행하는 때가 되면 자신의 믿음을 지키는 것도 매우 힘들게 됩니다. 그때에는 우리는 (      )의 오심을 더욱 갈망하게 될 것입니다.

설교, 박해, 주님

많은 교회의 강단(성전의 제단을 이렇게 해석했습니다)에 우상숭배의 가증한 것이 점령할 때에는 가시적 교회의 부패와 전세계적인 영적&육적 재앙으로 인해서 복음전도가 쉽지 않게 됩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것을 보거든' 성경에서 '우상'을 나타내는 원어는 '허무함' '아무것도 아님' '쓸모 없음'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 의 표현은 '황폐함의 가증한 것'으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즉, 쓸모없는 것을 신으로 섬기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가증한 것입니다. 즉, 우상이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성전모독에 대한 예언은 다니엘 11:31에서 처음 나오는데 예수님께서 여기에서 인용하신 것입니다. 다니엘의 예언은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175 - 165 BC)가 성전에 제우스 신상을 세움으로써 이뤄집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예언은 온갖 우상 신상을 가지고 있는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과 성전을 완전히 훼파할때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때가 AD 70년입니다.

그러면 이 예언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할까요? 1) 하나님은 구약제사가 중심이 되는 종교 시스템을 완전히 파괴시키실 것입니다. 2) 어떠한 인간의 전통이나 형식들에 집착하면 우상숭배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교회는 그가 오실때까지 그의 말씀과 영으로 늘 개혁해야 합니다. 3) 마지막 때가 가까이 오면 가시적 교회의 타락 (우상숭배로 인한)이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돈,쾌락, 권력이 교회안에서의 우상이 될 것입니다.

단, 1단계(박해와 전도)와 2단계(교회의 타락)의 경계는 명확하지 않으며 동시에 일어나기도 또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교회 역사에서 봅니다. 


4. 재난의 시작 시기의 징후는? (5-6, 7-8, 9)

거짓 예언자와 거짓 메시아

전쟁과 지진

박해

‘재난의 시작’이라는 번역된 원어의 의미는 ‘산통의 시작’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시는 것을 아이가 출산하는 것으로 비유했습니다. 그때가 임박할때 교회가 겪는 고통을 산모가 아이를 출산할때의 고통으로 묘사합니다.


5. 9~13절은 사역과 전도의 어려움으로 인해 낙담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9~11절에 따르면 우리에게 주어지는 박해의 목적은 무엇인가요? 

복음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증거가 되려함이라', '복음이 먼저 만국에’,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료 성령이시니라’ 라는 표현을 주목하십시오. 십자가 복음이 가장 선명하게 선포되는 현장은 바로 박해가운데 있는 성도의 선포입니다. 바울은 재판받을때마다 자신을 변호하기보다 복음을 전했음을 기억하십시오.


6. "끝까지 (          )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견디는

삶의 어려움과 십자가의 시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시련에서 벗어날 것인가보다 어떻게 신실한 증인이 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출 것입니다.



‘보다’는 동사는 본문에서 여러 번 사용됩니다.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2), 주의하라 (5, 9, 33), 보거든 (14, 29), 삼가라 (23). 이 모든 표현들은 원어에서 ‘보다’라는 동사를 사용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무엇에 주목해야 하는지 가르쳐 줍니다. 


눈에 보이는 교회나 사역의 크기에 놀라지 말고 그것을 좇지 말고, 주님 오시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징조를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삼가라'라고 거듭 말씀하십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현혹되거나 혹은 겁먹지 말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집중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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