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보라 너희 왕이로다. "가이사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요19:1 – 16)

빌라도는 예수님을 풀어주려고 했지만, 유대 지도자들은 계속해서 그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쳤습니다. 

👉 요한복음 19:1 - 16


Q1. (1 – 3) 군병들을 예수께 어떻게 하였나요?

채찍질하고, 가시로 만든 관을 씌웠으며 자색옷을 입혔습니다. 그리고 손바닥으로 (뺨을) 때리면서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라면서 조롱했습니다.

가시관과 자색옷은 예수께서 ‘유대인의 왕’으로 불리신 것에 대한 조롱이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죄가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4), 예수님을 이렇게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로마군병들이 예수께 행한 악한 일들을 모두 목격한 요한은 그 사건을 담담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마치 요한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주님의 아픔과 요한의 마음을 한번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고통을 참으신 것입니다.


Q2. 빌라도는 예수님이 결백하다는 것을 알고 (    절,    절) 그를 풀어주려고 했습니다. (      절). 또한 빌라도는 그들이 예수님을 고소하는 이유가 (          ) 이시라는 것을 듣고 더욱 두려워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최소한 신적 존재에 대한 경외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풀어준다면 (          )의 친구가 아니라는 말을 듣고 두려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기로 결심합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결백하다는 것을 알고 ( 4절,  6절) 그를 풀어주려고 했습니다. (  12절). 또한 빌라도는 그들이 예수님을 고소하는 이유가 ( 하나님의 아들 ) 이라는 것을 듣고 더욱 두려워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최소한 신적 존재에 대한 경외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풀어준다면 ( 가이사 )의 친구가 아니라는 말을 듣고 두려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기로 결심합니다.

신적 존재에 대한 빌라도의 두려움은 비록 이교도 신화로부터 유래하였지만 신적 권위앞에서는 겸손함을 보였습니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신은 종종 인간의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당장의 위협앞에서는 불의 (죄가 없는 예수님을 처형함)에 굴복하게 됩니다.


Q3. 유대인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신성모독을 고소할 만큼 하나님의 영광을 중시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빌라도가 예수님을 두고 “보라 (              )” 하였을때, 그들은 “(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라고 외쳤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가졌지만, 증오심이 그들의 눈을 멀게 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게 했습니다. 심지어 이방인 빌라도마저도 예수님을 놓아주려 하였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시길, “나를 네게 넘겨준자의 죄는 더 (     )” 하셨습니다.  

유대인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신성모독을 고소할 만큼 하나님의 영광을 중시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빌라도가 예수님을 두고 “보라 ( 너희 왕이로다 )” 하였을때, 그들은 “(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라고 외쳤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가졌지만, 증오심이 그들의 눈을 멀게 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게 했습니다. 심지어 이방인 빌라도마저도 예수님을 놓아주려 하였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시길, “나를 네게 넘겨준자의 죄는 더 ( 크다  )” 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긴다는 명분으로 예수님이 자신들의 왕이 되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가이사를 자신들의 왕으로 (입으로나마) 고백함으로써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을 버리게 되는 것이 되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과는 다른 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 으로서 ‘하나님을 본자는 죽는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만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향한 증오심으로 인해 그를 죽게 한 것은 (이들이 로마의 손을 빌어서 죽인 것은 교묘합니다. 자신들이 죽이지는 않았으니까요) 사랑이라는 율법의 정신을 어긴 것입니다.

종교 지도자와 빌라도, 누구의 죄가 더 큰가요? 두려움에서 오는 죄보다 증오에서 오는 죄가 더 무거운 형벌을 가져올 것입니다.

두려움은 우리로 하여금 진리를 향하여 눈을 감게 하지만, 증오는 우리의 눈을 멀게 하여 진리를 알아보지 못하게 합니다.



그들은 평화의 왕을 거부하고 힘으로 다스리는 가이사를 택했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자신들의 종교와 성전을 지키는 평화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성전을 파괴한 것은 ‘예수’가 아니라 가이사의 군대였습니다.

당신이 돈이나 명성을 추구할 때, 그것들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돈을 원했던 바로 그 이유인 평화 (혹은 행복)를 가질 수 없습니다.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01: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요 1:1 – 18)

35: 나는 참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요 15:1 – 17)

37: 이해되지 않을때에도 순종해야 하는 이유 (신 29:1 -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