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표적을 구하는 여룹바알 (사사기 6:25 – 40)
기드온의 첫 번째 임무는 바알과 아세라를 무너뜨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여룹바알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표적을 구하는 습관을 보였습니다.
Q1. 그 ( )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나타나 바알의 제단과 그 옆의 아세라 상을 파괴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그리고 새로 지은 여호와의 제단에서 ( )년 된 수소를 번제로 드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지만 기드온은 ( )을 두려워하여 낮에 하지 못하고 밤에 행했습니다.
그 ( 날 )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나타나 바알의 제단과 그 옆의 아세라 상을 파괴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그리고 새로 지은 여호와의 제단에서 ( 칠 )년 된 수소를 번제로 드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지만 기드온은 ( 아버지의 가문과 성읍 사람들 )을 두려워하여 낮에 하지 못하고 밤에 행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그에게 처음 나타나신 날 밤에 명령하셨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요새는 주로 언덕 꼭대기나 산봉우리, 바위 절벽, 동굴 같은 자연적인 방어 지형에 지어졌으며, 예루살렘과 여리고 같은 성벽을 세운 도시도 포함됩니다. 다음 그림은 이스르엘 골짜기 끝자락에 있는 므깃도 지역에 있는 작은 언덕에 세워진 요새의 사진입니다. 기드온와 그의 가족들은 미디안 족속을 피해 사사기 6:2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러한 요새와 비슷한 곳에 살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들은 그 요새에 바알의 제단과 아세라 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는 그들이 바알과 아세라에게 얼마나 절박하게 의지했는지를 보여줍니다.
Q2. 기드온은 어떻게 분노한 이웃들과 친척들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 있었나요? 기드온의 또 다른 이름은 무엇이었나요?
그의 아버지가 그를 변호하며 “바알이 정말 신이라면 그가 스스로 싸울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여룹바알 (바알과 싸우는 자)이 기드온의 또 다른 이름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여호와께서 이 명령을 내린 이유를 명확히 밝히지 않지만 몇가지 강조점을 통하여 그이유를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 명령이 여호와께서 기드온을 사사로 부르신 날에 주어졌다고 말합니다. 또한, 기드온은 사람들의 두려움 때문에 대낮에는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인해 여룹바알이라는 이름이 기드온에게 주어졌습니다. 따라서 본문에서 중요한 것은 우상을 허문 것이 아니라 사명을 받은 기드온에 대한 것입니다.
이 사건을 앞부분의 기드온의 소명 이야기의 연장으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부르시고 그날 밤에 첫 임무를 주실 때 여룹바알이라는 이름을 그에게 주어지도록 의도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하나님께서 일꾼을 부르실때 새로운 이름을 주시곤 합니다. 아브라함, 세례 (침례) 요한, 베드로의 사례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기드온에게 ‘바알과 싸우는 자’라는 이름을 주셨을까요? 기드온의 약점은 무엇이었습니까? 기드온은 인간적인 요소에 의지했으며(15절), 눈에 보이는 표적을 구했고(17절), 인간의 위협을 두려워했습니다(27절).
여룹바알이라는 이름이 불릴 때마다, 기드온은 바알 신학이 대표하는 물질주의 신학/세계관을 경계했을 것입니다. 또한 그 이름은 우상숭배와 형상의존 성향과 싸워야 하는 그의 임무를 잊지 않도록 했을 것입니다. 이어지는 이야기 (300명 용사의 전투, 세바와 살문나 추격)의 내면에 흐르는 주제중의 하나는 눈에 보이는 형상이나 표적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바알과 싸우는 자’의 정신입니다.
또한 바알과 아세라 상을 파괴함으로써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나 하나님께 더욱 의지하도록 하였을 것입니다.
수소는 바알의 상징으로 다산과 힘을 나타냈습니. 바알 숭배자들에게 있어 7년 된 수소를 여호와께 드리는 것은 바알의 완전한 굴욕과 수치였을 것입니다.
Q3.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여 미디안 사람들과의 전쟁을 위해 군대를 소집하도록 격려하셨을 때, 기드온은 승리의 표적을 두 번 구했습니다. 그가 구한 표적은 무엇이었습니까? 그의 믿음 부족을 암시하는 구절은 무엇입니까?
양털에만 이슬이 맺히게 하시고, 그 다음 날은 반대로 해달라고 구했습니다.
14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내지 아니하였느냐?”라고 말씀하셨고, 기드온은 36절에서 이것을 하나님의 약속으로 인식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확인의 표적을 구했고, 하나님의 은혜로 그 표적을 받았습니다.
표적을 구하는 기드온의 태도를 우리가 본 받으라고 성경저자는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기드온은 후에 금 에봇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우상이 됩니다. 기드온은 여전히 하나님의 약속보다 눈에 보이는 표적에 의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이 지역에 기업을 할당받은 잇사갈 지파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여룹바알이라는 이름의 의미가 눈에 보이는 형상과 싸운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기드온은 계속해서 눈에 보이는 표적을 구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전"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종 육신의 감각에 의존합니다. 주님께서 기드온을 훈련하시고 그의 목적을 위해 사용하신 것처럼, 주님께서도 우리를 훈련하시며 우리를 통해 그의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