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불의한 청지기, 어리석은 바리새인, 그리고 나사로 이야기 (누가복음 16:1–31)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것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처소로 영접하리라.” (16:9)
👉 누가복음 16:1–31을 읽으십시오.
Q1. 이 비유는 이해하기 어려운 비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러한 본문을 읽을때에는 우리가 스스로 평가하기보다 예수님의 결론(8–9절)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4, 9)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십시오.
청지기가 자신에게 맡겨진 재물로 해고 이후의 삶을 준비했던 것처럼, 우리도 지금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원으로 죽음 이후의 삶을 준비해야 합니다.
썩어 없어질 일시적인 소유를 사용하여 썩지 않을 영원한 상을 얻으십시오.
청지기가 빚을 조정할 법적 권한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자신의 장래를 위해 주인의 손해를 감수하게 한 것은 청지기의 신실한 책임을 저버린 행위였습니다. 그의 행동은 도덕적으로 옳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윤리성을 평가하기보다, 그의 지혜로움을 칭찬한 주인(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9절이 이 비유의 핵심입니다. “불의한 재물”로 영원한 친구를 사귀십시오.
헬라어에서 "불의한 재물"은 "불의한(속이는) 맘몬"이라고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왜 맘몬(재물의 신)은 속이는 존재일까요? 처음에 돈이 우리에게 다가올때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우리의 종으로 다가오지만, 우리가 돈을 의지하기 시작하고 그것을 삶의 최우선 가치로 삼는 순간, 돈은 우리를 지배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맘몬의 속이는 본성입니다. 한 번 맘몬의 종이 되면 하나님을 섬길 수 없습니다(13절).
Q2. (10–12) 우리는 청지기의 윤리성이 아니라 그의 지혜로움을 배워야 합니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정확히 이해하고 지혜롭게 행동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세상의 재물'과 청지기에게 맡겨진 '재산'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둘 다 하나님의 나라의 참된 부요에 비하면 ( )에 불과합니다. 둘 다 우리의 소유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재산으로서 우리에게 ( )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 )했는지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합니다.
• (매우 작은 것)
• (맡겨진 것)
• (사용했는지)
Q3. (10–13) 우리가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을 신실하게 관리하지 못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맡겨진 것을 마치 영원히 우리의 소유인 것처럼 여깁니다 ( 절). 언젠가 사라질 재물이 우리 마음의 중심 가치가 되면, 우리는 하늘의 진리를 보지 못하게 됩니다 ( 절). 하늘의 훨씬 더 큰 복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의 것에 집착하게 됩니다( 절). 결국 하나님보다 맡겨진 재물을 의지하게 되고, 그것을 마음의 중심 가치로 삼음으로써 맘몬을 우리의 신으로 만들게 됩니다( 절).
답: 12, 11, 10, 13
•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함’: 사라지게 될 세상의 재물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 ‘큰 것에도 불의함’: 영원한 가치를 가지는 하나님 나라를 외면하는 것입니다.
• ‘불의한’(ἄδικος)이라는 말은 돈 자체가 악하다는 뜻이 아니라, 이 세상에 속한 재물이 사람을 속여 하나님 대신 의지하게 만들기 때문에 붙여진 표현입니다.
• 참된 가치가 없는 불의한 재물에 미혹되어 그것을 신실하게 관리하지 못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참된 부요를 우리에게 맡기실 수 없습니다.
• 9절, 11절, 13절에서 ‘재물’로 번역된 헬라어는 모두 맘몬(Mammon), 곧 재물의 신입니다.
Q4. 바리새인들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14–18절)
• 돈을 사랑했습니다.
• 사람들에게 인정과 칭찬받기를 구했습니다.
• 복음(예수님의 가르침)에 무지했습니다. (율법을 폐하러 온것으로 오해함)
14–15절에서 바리새인들은 물질적인 축복을 자신의 선한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보상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시자 그분을 비웃었습니다. 그들의 실패는 모든 것을 사람의 눈으로 판단하고, 자신의 죄된 마음을 보지 못한 데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모두 원하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것이 됩니다. 예를 들어 부유케 되고자 하는 것.
16–17절은 율법과 복음 사이의 단절성과 연속성을 함께 보여 줍니다. 다시 말해, 복음은 율법을 더 높은 차원에서 완성합니다. 예를 들어,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고후 5:4)는 말씀처럼, 생명은 율법이 요구하는 죄의 사망 형벌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그 죽음을 통과하여 부활의 생명을 가져오는 방식으로 옵니다.
18절은 복음이 율법을 더욱 온전하게 성취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이혼을 금하실 뿐 아니라, 이혼한 여자와 결혼하는 것까지 금하심으로써 결혼 언약의 파기를 최종적으로 확정하는 행위(전남편과 결혼할 길을 막아버림) 까지도 정죄하셨습니다.
Q5. 부자가 왜 결국 스올(여기서는 지옥으로 이해할 수 있음)에 가게 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25, 31절, 레위기 25:35–36)
그는 자기 집 대문 앞에 누워 있는 나사로를 돌보지 않았고, 자기 혼자만 부를 누렸습니다. 또한 그의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모세와 선지자들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구약의 율법에 따르면 그는 가난한 자를 도와야 했습니다.
그는 지극히 작은 것, 곧 세상의 재물과 다른 사람의 소유를 신실하게 관리하지 못한 사람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더 귀한 것, 곧 참된 부요와 영원한 생명을 맡기지 않으셨습니다.
세상의 재물과 하나님 나라의 부요의 비교
• 매우 작은 것 ↔ 큰 것
• 불의한 것 ↔ 참된 것
• 다른 사람의 것 ↔ 우리의 것
‘~에 신실하다’(헬라어 πιστὸς ἐν)는 "~을 믿는다"거나 "~을 섬긴다"는 뜻이 아니라 "그 일에 있어서 신실하다"는 의미입니다. 10–12절에서 ‘신실하다’, ‘믿을 만하다’, ‘맡기다’는 모두 같은 헬라어 어근(πιστός / πιστεύω)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이 문맥은 누군가가 귀한 것을 맡겼을 때 그것을 어떻게 관리하는지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신실함은 재물 자체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그것을 맡기신 하나님께 대한 충성입니다.
또한 ‘불의한’(ἄδικος)은 ‘참된’(ἀληθινός)과 대조됩니다. 이 두 단어를 함께 보면, 청지기의 신실한 관리와 진리를 아는 것은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1절: 우리가 세상의 재물을 붙들고 있는 한,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지혜를 우리에게 맡기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을 자신의 만족만을 위해 사용한다면, 참으로 우리의 것이 될 영원한 유업과 영광도 맡겨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하늘의 영광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감사하기보다 자랑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청지기의 빚 조정은 도덕적으로 잘못된 행동이었지만, 그의 지혜는 자신의 권한이 일시적이며, 자신이 관리하는 재물이 본래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은 데 있었습니다. 8절은 이러한 통찰을 칭찬하며, 9절에서는 그 교훈을 우리에게 적용합니다. 곧, 이 세상에 속한 재물을 영원한 목적을 위해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결국 불의한 재물을 다루는 것에 있어서 신실하다는 것은 그것이 영원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나사로와 부자의 비유는 바로 이 교훈을 실천하지 못한 부자의 실패를 보여 줍니다. 그는 세상의 재물로 영원한 친구를 사귀지 못했고, 결국 하나님의 나라의 참된 부요를 얻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