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다윗이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다 (사무엘하 6:1–23)
여호와께서는 오랫동안 유리하던 언약궤가 다윗성으로 옮겨지도록 허락하셨으며, 예루살렘을 자신의 거처로 택하셨습니다.
Q1. 다윗은 택한 자 ( ) 명을 모아 바알레 유다로 올라가, ( )라 불리는 하나님, 곧 ( ) 사이에 좌정하신 하나님의 궤를 옮기고자 합니다. 그들은 그 궤를 ( ) 위에 싣고 ( )의 집에서 가져나오게 됩니다. 다윗과 온 이스라엘은 많은 ( )로 기뻐하며 즐거이 찬양하였습니다.
다윗은 택한 자 (30000) 명을 모아 바알레 유다로 올라가, (만군의 여호와)라 불리는 하나님, 곧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하나님의 궤를 옮기고자 합니다. 그들은 그 궤를 (새 수레) 위에 싣고 (아비나답)의 집에서 가져나오게 됩니다. 다윗과 온 이스라엘은 많은 (악기)로 기뻐하며 즐거이 찬양하였습니다.
다윗은 철저히 준비하고 여호와께 극진한 공경과 예를 다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최선과 정성을 다했지만 하나님의 궤를 다르는 규례를 무시한 것은 잘못입니다. 언약궤를 오직 레위인들이 어깨에 매고 옮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Q2. 베레스 웃사(Perez-Uzzah)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7–8절, 5:20과 비교)
이것은 웃사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폭발을 의미합니다. 사무엘하 5:20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원수들, 블레셋을 향해 공격하셨다면, 여기서는 그 진노가 그의 백성에게 향합니다. 이는 사무엘상 6장에서 하나님께서 벧세메스 사람들을 치신 것과도 유사합니다.
언약궤가 처음 기럇여아림의 아비나답의 집에 도착했을 때, 그는 아들 엘르아살을 지명하여 궤를 지키도록 했습니다. 그들은 레위인이 아니었지만 경외심으로 궤를 조심히 다뤘습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습니다. 약 70~100년 동안 궤가 그 집에 머무는 동안, 그들은 궤에 대해 더 깊은 이해를 갖지 못하고 단지 하나님의 궤를 이방 신상 정도로만 이해한 것입니다. 레위인이 어깨에 메어야 한다는 규례를 알지 못하고 나름 최선을 다한다고 새 수레에 실었습니다. 이 무지는 결국 오랜 동안 언약궤를 보호해왔던 헌신이 비극적 결말로 끝나게 했습니다. .
Q3. 다윗은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언약궤를 ( )의 집에 두었습니다. 세 달 후, 여호와께서 오벳에돔의 집에 ( )을 주셨다는 소식을 듣고,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기쁜 마음으로 ( )으로 옮기게 됩니다. 그는 ( ) 옷을 입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즐거이 춤추었습니다.
다윗은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언약궤를 (오벧에돔 )의 집에 두었습니다. 세 달 후, 여호와께서 오벳에돔의 집에 ( 복 )을 주셨다는 소식을 듣고,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기쁜 마음으로 ( 다윗성 )으로 옮기게 됩니다. 그는 ( 세마포 ) 옷을 입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즐거이 춤추었습니다.
오벳에돔은 레위인이었습니다. (역대상 15:18, 21, 24)
Q4. 다윗은 궤를 옮긴 후 어떤 일을 했습니까? (세 가지, 17–19절)
1. 그는 자신이 준비한 장막에 언약궤를 두었습니다. (당시 성막은 기브온에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2. 그는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3. 그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을 선포했습니다.
이 행동들과 세마포 에봇을 입은 모습은 다윗이 제사장의 역할을 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면 다윗은 율법을 깨뜨린 것인가요? 하나님께서 허용하셨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Q5. 미갈이 자녀를 낳지 못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미갈은 다윗이 언약궤 앞에서 기뻐하며 절제 없이 춤춘 모습을 왕의 체면을 버린 행동으로 여겨 업신여겼습니다. 이에 대해 다윗은 그녀를 엄하게 책망했습니다.
미갈은 언약궤의 귀환이 지닌 영적 의미와 축복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그녀는 다윗의 집에서 여호와의 복을 함께 누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 그림은 사사 시대와 왕정 초기 동안 성막과 언약궤가 어떻게 옮겨졌는지를 보여줍니다.
사사 시대 동안 성막은 실로에 있었고, 블레셋에 의해 그 제사장 도시가 파괴될 때까지 그곳에 머물렀습니다 (사무엘상 5장). 블레셋에게 궤를 빼앗긴 이후로 그 언약궤는 다시는 성막으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블레셋에서 돌아온 언약궤는 기럇여아림의 아비나답의 집에 약 70~100년간 머물렀고, 그 후 오벳에돔의 집에 3개월 간 머문 후 다윗이 그것을 다윗성의 장막으로 옮겼습니다.
언약궤가 이렇게 옮겨지는 동안, 성막은 엘리의 후손들에 의해 놉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이 엘리 가문 출신의 제사장 85명을 학살한 후, 성막은 다시 기브온으로 옮겨졌고, 솔로몬 성전이 세워질 때까지 그곳에 머물렀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에게 내린 재앙 사건(사무엘상 5장), 벧세메스에서의 심판(사무엘상 6장), 그리고 웃사에게 임한 진노(사무엘하 6장)는 모두 여호와께서 언약궤가 머물 장소, 곧 주님의 임재가 거할 곳을 직접 선택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 때문에 다윗은 언약궤가 마침내 다윗성으로 옮겨질 때 크게 기뻐했습니다. 이는 곧 여호와께서 다윗을 선택하셨음을 의미합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요일 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