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삭개오와 열 므나 비유 (누가복음 19:1 – 27)

예수님의 가르침은 사람들의 관점과는 다소 다릅니다. 사람들은 흔히 주님께서 의인을 찾으신다고 생각하지만, 죄인을 찾아 오셨습니다. 처음 보면 주인이 종에게서 므나를 빼앗은 것이 가혹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 사건 모두 같은 진리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고, 하나님의 목적을 신뢰하지 못하면 예수님을 따르는 데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 누가복음 19:1-27을 읽으십시오.


Q1.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시는 것을 보고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그들은 예수님께서 죄인의 집에 들어가 손님이 되셨다고 불평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5절: 예수님께서는 삭개오를 찾아오셨고 그의 집에 머무르셨습니다. 삭개오는 기쁨으로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삭개오를 구원하시기 위해 그에게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삭개오를 찾아오셨을 때, 그는 감동을 받고 자신의 소유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은혜를 만나면 변화되고 회개하게 됩니다.

삭개오의 반응은 앞 장에 나오는 부자 관리의 반응과 대조됩니다.



Q2.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실 때, 사람들은 곧 (         )이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왕이 되시면 주님과 함께 다스리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왕권을 가져오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며, 종들은 자신들에게 맡겨진 므나로 얻은 만큼의 (        )을 다스리는 권한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실 때, 사람들은 곧 ( 하나님의 나라 ) 가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왕이 되시면 주님과 함께 다스리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왕권을 가져오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며, 자신의 종들은 자신들에게 맡겨진 므나로 얻은 만큼의 ( 고을 )을 다스리는 권한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비유를 알레고리적으로 해석하자면, 맡겨진 한 므나는 주님께서 맡기신 각자의 영혼(혹은 구원)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더 많은 므나를 얻는다는 것은 주님의 목적, 곧 죄인을 구원하시는 목적과 연결하여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인이 돌아오실 때 세우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더 많은 사람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주인이 왕이 되어 돌아왔을때, 게으른 종의 므나는 빼앗기지만, 마태복음의 달란트 비유처럼 그가 성 밖으로 쫓겨나는 것으로 묘사되지는 않습니다. 이 불충성한 종이 구원받을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누가복음이 말하지 않습니다.

17절부터 주인의 명칭이 ‘귀인(nobleman)’에서 ‘왕(king)’으로 바뀐 점에 주목하십시오.



Q3. 한 므나를 가져온 종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21-23절)

그는 주인을 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 주인의 명령에 불순종한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우리를 넘어지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불순종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가져가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사람입니다.” 그 종은 다음과 같이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장사를 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주인은 나에게 더 많은 므나를 얻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도 보여 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도움도 없이 나를 위험한 곳으로 보내시니 너무 요구가 많으십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주인이 맡기신 므나를 잃어버리면 어떻게 합니까? 차라리 잘 보관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그러면 적어도 잃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는 주인의 질책을 두려워하여 그의 명령에 불순종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대위임령을 맡았을 때 가질 수 있는 생각과 같습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신뢰하고 사역의 현장으로 나아가면, 주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만약 우리가 자신의 구원에만 집중하고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맡겨진 것을 잃어버린 종처럼 우리에게 맡겨진 것을 잃을 위험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 종이 지식이 부족했다는 것이 아니라 신뢰가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결과의 불확실함을 핑계로 불순종한 것입니다. 반면 충성된 종들은 모든 결과를 알지 못했지만 주인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의미하신 것은 이것입니다.

“네가 내가 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면, 적어도 내 므나를 은행에 맡겼어야 했다. 그러나 너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너의 변명과 너의 행동은 서로 맞지 않는다.”

이 종은 더 많은 므나를 얻지 못하면 주인의 책망을 받을까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책망을 피하려고 오히려 주인의 명령에 불순종했습니다. 그의 논리는 스스로 모순되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만날 때 겸손히 자신을 굴복시키지만,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권위에 반항합니다. 이 종은 주인의 명령의 중요성을 깨닫고 더 열심히 일할 수도 있었지만, 대신 반역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잘못된 것입니다.



Q4. 비유에서 귀인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백성들은 누구를 가리키며, 그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그들은 유대인들, 특히 종교 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대표단을 보내 더 높은 권위자(하나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거부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빌라도가 그들에게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라고 물었을 때, 대제사장들은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요한복음 19:15).



Q5. “잘하였다, ( ) 종아! 네가 ( )에 충성하였으므로 ( )을 다스리는 권세를 차지하리라.”

“무릇 있는 자는 ( ),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 ).”


“잘하였다, ( 착한 ) 종아! 네가 ( 지극히 작은 것 )에 충성하였으므로 ( 열 고을 )을 다스리는 권세를 차지하리라.”

“무릇 있는 자는 ( 더 받겠고 ),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 빼앗기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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