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누가복음 22:24 – 46)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음의 의미를 설명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누가 가장 큰 자가 될 것인지에 대해 논쟁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의 본질과 예수님의 길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감람산에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셨습니다.
👉 읽기 누가복음 22:24-46
Q1. 예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생각되자, 제자들은 자기들 중에서 ( )하는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나라가 이방인의 나라와 어떻게 다른지를 가르치십니다. 앉아서 먹는 자가 섬기는 자보다 크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그들 가운데 ( )로 계십니다.
“나의 ( ) 중에서 항상 나와 함께 하는 자들은 ( ) 나라에서 ( )상에서 먹고 마시며 열두지파를 다스릴 것이다”
예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생각되자, 제자들은 자기들 중에서 (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나라가 이방인의 나라와 어떻게 다른지를 가르치십니다. 앉아서 먹는 자가 섬기는 자보다 크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그들 가운데 ( 섬기는 자 )로 계십니다.
“나의 (시험 ) 중에서 항상 나와 함께 하는 자들은 ( 내) 나라에서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열두지파를 다스릴 것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십자가로써 그들을 섬기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나라를 주실 것입니다. 여기 주목하십시오. 그의 나라는 우리가 스스로 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힘으로 나라를 차지하는 이방왕들과 다릅니다. (주의: 여기서는 “세상 나라”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나라를 나타내도록 되어 있었지만, 이방나라와 같이 되어버렸습니다.)
‘나라를 맡기신다’는 것은 하나님에 의한 높아짐과 영광을 받음을 의미합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누가 더 높은 직분을 놓고 다투지는 않나요?
이러한 예수님의 사역은 스스로를 ‘은인’이라고 부르면서 다른 사람들을 억압하는 이방 왕들의 거짓을 드러낼 것입니다.
아버지가 자녀를 돌보는 것처럼 다스리는 자들은 연약한 이들을 섬겨야 합니다.
Q2. 32절에 따르면, 우리가 믿음 안에 굳게 서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 형제들을 강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본문의 문맥에서 강한 믿음이란 베드로처럼 자신이 가장 큰 자가 되려고 하거나 자신을 지나치게 의지하지 않고, 주님의 시험에 그분과 함께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베드로는 실패에서 회복된 후, 다른 사람들이 실패하지 않도록 인도하고 그들의 믿음을 강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주목하십시오. 우리의 믿음을 붙드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시몬도 가장 큰 자가 되기를 원했습니까? 앞의 문단과 연결해서 보면, 예수님께서는 “가장 큰 자가 되려고 하지 말고, 믿음에서 실패하지 않도록 깨어 있으라”고 지적하십니다. 가장 큰 자가 되려는 것 = 실패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Q3.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돈주머니와 칼을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습니까? (37)
예수님에 관한 박해의 성경 말씀이 이루어져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심한 거절과 박해를 당하시게 되었고, 그것은 결국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것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내셨을 때에는 그들이 병든 자들을 고치면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극적으로 달라질 것입니다. 37절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핵심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고난과 적대에 대비해야 합니다. 이것은 그들이 저항하거나 싸워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러한 반대와 적대를 견딜 준비를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족하다”고 말씀하신 것은 각 사람이 칼 하나씩을 준비하라는 뜻이 아님을 말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역의 두 단계를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우리가 사람들을 도울 때 사람들이 우리를 환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그들에게 도전하기 시작하면, 많은 사람들이 돌아설 것입니다.
Q4. “( )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겨 주십시오. 그러나 ( )대로 마옵시고 ( )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아버지여, 내 원, 아버지의 원
십자가는 아버지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뜻은 아니었나요? 이런 질문은 적합하지 않습니다. ‘뜻’ ‘섭리’는 오직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십자가는 아버지의 뜻이었으며 아들의 순종입니다!
내 뜻, 내 계획, 내 의 이러한 단어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의만이 있기 때문입니다.
Q5.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 주는 두 가지 요소는 무엇입니까? (40, 46, 43)
기도, 하나님의 도움.
두 구절(40, 46)은 반복해서 같은 메시지를 말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십시오.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40절은 유혹에 빠지지 않게 46절은 시험에 들지 않게 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헬라어 본문은 동일하게 ‘시험(혹은 유혹)에 들어가지 않도록’으로 되어 있습니다. 야고보서 1:2에서 말하는 시험에 “떨어지는 것(빠지는 것)”이라기보다, 죄나 시험의 상황에 점차 들어가는 것을 강조합니다. 우리가 기도로 깨어 있지 않으면 시험의 상황에 들어갈 수 있고, 그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을 수 있습니다. 베드로에게서 볼 수 있듯이, 부주의함은 종종 자신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에서 비롯됩니다. 베드로가 자신이 예수님을 위해 죽을 수 있다고 그렇게 자신하지 않았다면, 대제사장의 뜰에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며 예수님을 부인하게 되는 상황에 직면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개인적인 죄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우리는 죄에 가까기 다가가면서 그 선을 넘기 전에 언제나 스스로를 멈출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자신이 어디에 와 있는지를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멈추기 어려운 내리막길에 들어서 있을 수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음 → 시험에 빠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 잠언 16:18
43-44절은 누가복음에만 나오는 내용입니다. 누가는 의사였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하셨는지를 자세히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토록 간절히 기도하실 때, 제자들은 잠들어 있었습니다. 누가는 제자들이 잠든 모습을 한 번만 기록하지만, 마태와 마가는 세 번 기록합니다.
πειρασμός(읽기: 페이라스모스)는 ‘시험’ 또는 ‘유혹’으로 번역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의 시험’(28절)에 계셨고, 제자들은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해야 했습니다(40절). 46절은 다시 ‘시험’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육신이 죄의 욕망에 오염되어 있고,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쉽게 유혹을 받기 때문에 더욱 힘써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신의 고통과 고난을 이겨 내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치 기도 가운데 이미 자신의 생명을 내어드리시는 것처럼 매우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