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왕으로서 입성하시지만 가리워진 의미 (누가복음 19:28–48)
예루살렘 사람들은 예수님을 자신들의 왕으로 환영했지만, 그 왕이 그들에게 하나님과의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 오셨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눈에 가려져 있었기 때문에,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왕을 십자가에 못 박게됩니다.
👉 누가복음 19:28–48을 읽으십시오.
Q1. 예수님의 제자들은 나귀 새끼의 주인에게 어떤 말을 하였기에 그가 그것을 내어주었습니까?
“주께서 그것을 쓰시겠다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미리 약속해 두셨는지, 아니면 그 순간 주인의 마음을 기적적으로 움직이셨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대 근동에서는 왕이 공적인 목적을 위해 짐승이나 사람의 봉사를 요구할 권한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왕(메시아)으로서 입성하시는 것임을 드러내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주께서 쓰시겠다”라는 표현이 왕에 대한 권위와 순종을 잘 드러냅니다.
무리는 예수님을 왕으로 기꺼이 환영했지만, 어떤 왕이신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반면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께서 약속된 메시아이심을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분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두 부류 모두 눈이 가려져 있었습니다. 백성은 예수님의 사명을 오해했고,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정체를 거부했습니다.
Q2. 예수님께서 ( )에서 내려오는 길로 성에 가까이 오실 때, 제자의 ( )가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 ) 이여 하늘에는 ( ) 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
예수님께서 ( 감람산)에서 내려오는 길로 성에 가까이 오실 때, 제자의 ( 온 무리)가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 왕 ) 이여 하늘에는 ( 평화 ) 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
다른 복음서(마 21:9, 막 11:9, 요 12:13)는 사람들이 “다윗의 자손에게 호산나!”라고 외쳤다고 기록합니다. 누가는 이방인 독자들이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도록 “다윗의 자손”이라는 표현을 “왕”으로 풀어서 기록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셨을 때 천사는 “땅에서는 평화”를 노래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사람들이 “하늘에는 평화”라고 외칩니다. 또한 42절에서는 그들이 평화에 관한 일을 알지 못했다고 말씀합니다. 그들이 생각한 평화와 예수님께서 이루시려는 평화는 서로 달랐습니다.
백성은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 곧 메시아 왕을 통해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므로 메시아를 보내심으로 하나님께서 이제 그 언약의 약속을 이루실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언약의 의무를 이행하실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에서 그들은 “하늘에는 평화”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회복되어야 할 평화는 하나님과의 평화였습니다. 인간의 죄가 하나님의 심판을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누가는 백성이 생각한 평화(드디어 하나님께서 약속을 성취하신다는 관점)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이루실 더 근본적인 평화를 서로 대조하고 있습니다.
Q3. 예루살렘 주민들은 ( ) 에 관한 일을 알지 못하여 그것이 그들의 눈에 감추어졌고, 그들이 ( ) 날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재앙을 당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주민들은 (평화) 에 관한 일을 알지 못하여 그것이 그들의 눈에 감추어졌고, 그들이 ( 보살핌을 받는 ) 날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재앙을 당하였습니다.
‘보살핌을 받는 날’ : 직역하면 ‘방문을 받는 날’ 입니다. 심판 혹은 구원(보살핌)의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42-44절 본문에서 반복되는 “너”, “네”라는 표현은 예수님의 경고가 예루살렘 공동체 전체를 향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다가올 심판은 공동체적인 심판이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방문하심을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도시와 주민들이 함께 그 결과를 겪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중에 있는 몇몇 의로운 사람들까지도 예루살렘에 심판이 임할때 함께 고난을 당하게 됨을 알수 있습니다.
Q4. “내 집은 ( ) 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 )을 만들었도다”
내 집은 ( 기도하는 집) 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이것이 예루살렘과 종교지도자들에 대한 심판의 선언입니다.
이 본문에는 두 가지 종류의 실패가 나타납니다. 백성은 눈이 가려져 메시아께서 무엇을 하러 오셨는지, 또 어떤 평화를 가져오실 것인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왕으로 환영했지만, 결국에는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게 됩니다.
반면 종교 지도자들은 처음부터 예수님을 거부하였고, 심지어 그분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열 므나의 비유에서 귀인을 자기들의 왕으로 삼기를 거부하며 사절단을 보낸 그 백성들이 바로 여기에 나타난 종교지도자들입니다.
48절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음을 보여 줍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명절 기간에는 예수님 처형을 피하려 했고, 백성은 예수님을 자신들의 왕으로 세우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예수님께서 유월절 어린양으로 희생되셔서 자기 백성을 죄의 종살이에서 구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첫 번째 유월절을 통해 이스라엘이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원을 받았던 것과 같이, 예수님께서 죄의 종살이에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