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예수님의 권위 & 악한 농부들 & 세금 납부 (누가복음 20:1–26)

이 장에는 종교 지도자들과의 마지막 논쟁들이 기록되어 있으며,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이끌 자격을 상실했음을 보여 줍니다.

👉 누가복음 20:1–26을 읽으십시오.

Q1. 예수님께서 성전을 깨끗하게 하셨을 때, 종교 지도자들이 와서 예수님께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시 질문하시며,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의 권위와 요한의 권위가 같은 근원에서 왔음을 암시하셨습니다. 그들은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겠다고 대답했습니다. 무엇이 그들의 눈을 가렸습니까? (5–6절)

자기 의를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첫 번째 관심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진리를 아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비난받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그들이 자신들의 죄인 됨을 인정하고 요한의 세례를 받아들였다면, 예수님의 복음도 믿었을 것입니다.

요한이 광야에서 회개의 세례를 선포했을 때, 종교 지도자들은 대부분 그의 말을 무시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죄인으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메시지에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요한의 사역을 유익한 것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의 회개의 외침이 사람들을 다시 성전 중심의 예배로 돌아오게 할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요한은 제사장 스가랴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고 성전에서 상을 뒤엎으셨을 때, 그분은 그들의 권위와 이익을 모두 건드리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 맞서 그분의 권위가 어디에서 왔는지 물었습니다.



Q2. 악한 농부들의 비유는 종교 지도자들의 악한 태도를 보여 줍니다. 그들은 왜 주인의 아들을 죽였습니까?

그들은 포도원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정당한 상속자를 제거하면 포도원을 차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주인은 그들이 자신의 아들을 존중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그를 더욱 미워하여 죽였습니다. 이것은 종교 지도자들의 미움이 종들에 대한 것이나 아들 개인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주인에 대한 것이었음을 보여 줍니다. 특히 그 아들이 아버지에게서 왔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그를 미워했습니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하지 아니하나,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너희가 영접하리라.” (요한복음 5:43)

“그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16절)는 구약의 언약 질서에서 신약의 질서로의 전환을 가리킵니다. 포도원은 하나님의 백성을 나타내며, 농부들은 하나님의 사자들을 거부하고 마침내 하나님의 아들까지 거부한 종교 지도자들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지 못한 지도자들에게서 그분의 나라를 맡을 책임을 거두시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맺는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실 것입니다.



Q3. “백성이 이 말을 듣고 말하되 ‘이렇게 되지 말아지이다’ 하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 ) 보시고 이르시되 ‘그러면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 )이 되었다 함은 어찌 됨이냐?’”

“백성이 이 말을 듣고 말하되 ‘이렇게 ( 결코 ) 되지 말아지이다’ 하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 똑바로 ) 보시고 이르시되 ‘그러면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 모퉁이의 머릿돌 )이 되었다 함은 어찌 됨이냐?’”

“기록된 바의 의미가 무엇이냐”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적인 뜻이다. 그런데 어떻게 너희가 ‘결코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라고 말할 수 있느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건축자는 종교 지도자들을 나타냅니다.



Q4. 종교 지도자들은 악한 의도(20절)와 아첨(21절)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은지 물었습니다(22절). 그들의 질문은 겉으로는 세금 문제에 대한 진리를 묻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 의도는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려 제거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대답하셨습니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이 대답이 그들의 질문에 답이 되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나 단순한 대답은 아니었습니다. “바치다”(give)에 해당하는 헬라어 apodote는 “돌려주다” 또는 “반환하다”라는 의미도 가질 수 있습니다. 가이사의 것이라면 가이사에게 돌려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더 깊은 질문이 생깁니다. “가이사의 것은 무엇인가? 우리의 돈과 소유도 모두 가이사의 것인가?” “하나님의 백성이 세금을 냄으로써 세속 권력의 통치를 인정해야 하는가?” 세금을 낸다는 것이 가이사의 통치를 인정하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진정한 우리의 왕은 누구입니까? 가이사입니까, 하나님입니까?

이것이 세금 논쟁의 배후에 있던 더 깊은 긴장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가이사의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말씀을 통해 더 깊은 문제를 지적하셨습니다. 그들의 숨겨진 의도에 대해 예수님께서도 숨겨진 방식으로 답하신 것입니다.

이들이 아첨함으로써 예수님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고 원하는 대답을 얻으려 했습니다. 우리가 사람의 영광에 익숙해지면 우리의 영안이 어두워집니다. 경계하십시오.



Q5. 예수님의 대답은 세금에 대한 그들의 질문과 그들의 악한 의도 모두에 답하셨습니다. 세금 문제에 관해서는, 왜 그들은 세금을 내야 했습니까? 그리고 이것을 통해 볼 때, 예수님은 그들의 악한 의도에 어떻게 대답하셨습니까?

데나리온에는 가이사의 형상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가이사에게 속한 것이며, 가이사에게 돌려주어야 했습니다. 동전에 새겨진 그의 형상은 그가 통치자라는 권위를 나타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속하며,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종교 지도자들처럼 자신의 의와 영광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와 뜻을 구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말씀이 그들의 접근 방식, 곧 그들의 숨겨진 의도에 대한 진정한 대답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과 태도를 바로 세우지 않는다면, 진리를 올바르게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다윗 언약의 성취를 통해 임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따라서 가이사의 통치와 세금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과 서로 충돌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가이사에게 속한 것과 하나님께 속한 것을 구별하셨습니다. 데나리온에는 가이사의 형상이 있으므로 가이사에게 속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으므로 우리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보라,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느니라.” (누가복음 17:20–21)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보다도 지상의 제도나 정치적 조직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 아래 사람들을 두고 그들의 마음과 삶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가이사의 나라와 정치적으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모든 세속 권세를 주권적으로 다스리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들의 삶 가운데 임하여 우리가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모든 세속 권세는 심판을 받고, 하나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온전히 드러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세금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시는 동시에 그들의 더 깊은 문제를 드러내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한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께 속한 것, 곧 자신들의 마음과 삶을 하나님께 드리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위선은 그들의 생각을 왜곡하고 진리를 보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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