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나면서부터 눈먼 자를 치유하심 (요 9:1 – 17)

나면서부터 맹인된 사람을 치유하신 일로 인해서 바리새인들과 마찰이 발생했습니다. 안식일에 그일을 하셨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이일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었습니다.

👉 요한복음 9:1 - 17


Q1. "그에게서 (         )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작 함이라. 그리로 세상의 (      )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 빛

이 사람은 비록 장님으로 태어나 40년 동안 고통을 받았지만, 예수님의 사역에 참여할 수 있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빛이 없으면 아무도 일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드러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빛이 없다면 어떠한 사역도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시고 드러내신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은 이사람이 나면서부터 눈먼자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Q2. 그 사람이 어떻게 치유되었는지를 설명하는 구절을 찾으세요. (세 군데)

6-7절, 10-11절, 15절.

예수님은 충분히 그를 말씀으로 치유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눈먼 사람이 실로암까지 힘든 걸음을 하지 않아도 치유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굳이 진흙을 바르고 실로암까지 가서 씻도록 하였을까요?

저자는 예수님께서 고치신 과정을 반복하여 설명함으로써 예수님의 그러한 행동이 바리새인 입장에서 안식일 규정을 어기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예수님은 일부러 그렇게 하심으로써  바리새인의 안식일에 대한 잘못된 해석에 도전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안식일을 위반한 것으로 보이는 예수께서 눈먼자를 고치심을 보고 이 어찌된 일인지 바리새인들의 해석을 듣기 위해서 그 사람을 데리고 왔습니다. (13)


Q3. 고침받은 사람은 예수님을 선지자라고 인정합니다. 즉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왜 바리새파 사람들 중 일부는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았을까요?    

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리새인의 입장에서 보면 안식일 위반과 치유의 기적이 서로 모순됩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혼란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러한 이유라면 그들은 섣불리 판단하지 말고 좀더 기다렸어야 했습니다. 명확해질 때 까지

그들은 자신들의 율법 이해에 사로잡혀서 하나님의 일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일을 하나님께서 하실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 어리둥절합니다. 그런 순간에 섣불리 결정하지 말고 분명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 눈먼 사람은 오랜 동안 고통을 겪었지만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고 메시아를 만나게 되는 복을 받은 자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잘못된 율법해석에 집착함으로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 (태생적 맹인을 보게하심) 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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