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너희는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요 8:12 - 30)

예수님께서 자신이 세상의 빛이라고 선포하신 것은 예수님의 정체성이라기 보다는 예수님의 역할, 즉 하나님 아버지를 증언하고 드러내시는 역할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증언이 단지 한 사람의 증언이기에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합니다.

👉 요한복음 8:12 - 30


Q1. "나는 세상의 (       )이니 나를 (        )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      )의 빛을 얻으리라” 

"나는 세상의 ( )이니 나를 ( 따르는 )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 생명 )의 빛을 얻으리라”

빛이 비추어짐으로 보이지 않던 대상 (하나님) 이 드러나게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에 대해서 증언하셨지 자신에 대해서 증언하신 것이 아닙니다.

빛을 따라가는 것이 그 빛을 얻는 방법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야 매일의 삶에서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빛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것은 번영이 아니라 생명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평강과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앞 구절(간음한 여인의 이야기)에서 주님은 죄의 용서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 따르길 거부함으로써 그러한 하나님의 방법을 알지못하고 예수님을 죽이려했으며 그것이 바로 어두움가운데 걷는 것입니다.


Q2. 모세율법에 따르면, 누군가를 정죄하기 위해 최소 두 명의 증인이 필요했습니다. 그 논리를 여기에 적용하여 그들은 예수님의 증언이 오직 한 사람에 의한 것이므로 그 증언을 거부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증언이 옳다는 것을 어떻게 변호하셨나요? (14, 16 – 18)

예수님은 그가 어디서 오며 이디로 가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모든 판단의 절대적 기준이 되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서는 진리를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는 오직 예수님만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자기 자신에 대해 증언하신다고 해도 그 증언은 객관성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에 대해 증언하지 않고 하나님에 대해 증언하셨습니다. 그래서 14절에서 '내가 나를 위해 증언하여도'라고 하신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주님과 함께 계시고 증언하시기 때문입니다.

율법이 2명의 증인을 요구한 것은 누군가를 정죄하는 경우에 해당되는 것이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하나님의 보내신 자로 오신 예수님께 증거를 요구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판단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증언하러 오셨습니다. 하지만 그가 판단을 하시더라도 그 판단하심은 옳다고 말씀하십니다 (16).


Q3. 그들이 하나님 아버지를 모르는 이유는?   

그들이 예수님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다른 구절에서는 그들이 아버지를 알지 못함으로 인해 예수님을 믿지 못하였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7:17)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7:28)

예수님을 아는 것과 아버지를 아는 것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하나님을 아는 것과 나 자신을 아는 지식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Q4. (23–24) 왜 예수께서 가시는 곳에 그들이 오지 못한다고 하시나요?

그들은 세상에서 왔고 죄로 남아 있습니다.

예수께서 가시는 곳은 하나님께 가시는 것입니다.

"너희는 아래에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23). 요한복음의 예수님은 구원을 속함의 문제로 설명합니다. 이것이 요한복음의 특징입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요한복음 15:4)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그들이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요한일서 2:19)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의 예수님을 믿지 않음)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줄 믿지 아니하면” 에서 ‘내가 그인줄’에 해당하는 헬라어 표현은 출애굽기 3장 14절에서 모세에게 밝힌 주님의 이름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을 연상하게 합니다. 이렇게 해석하면 예수님께서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모세에게 나타나신 출애굽의 여호와'라고 선포하신 것이 됩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스스로 밝히지 아니하셨음을 고려할때 이렇게 스스로 여호와라고 밝히셨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따릅니다. 본문의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고수한다면, 이 표현은 "예수를 하나님이 보내신 분으로서의 예수를 라고 믿지 않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Q5.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 아버지께 집중하길 원하셨지만 그들은 ‘네가 누구냐?’라고 물으며 예수님의 자격에 대해서 도전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자신의 방법이 아니라 (       ) 아버지의 방법을 의지함으로 오직 아버지의 말씀만 전하였습니다. 아버지의 방법은 이것이었습니다. (        )가 들려질 때에 그들은 비로소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보내신자요 오직 아버지의 뜻에 따라 모든 것을 행하셨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십자가는 (        )와 아들이 함께 계심을 더욱 나타내는 것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자신의 방법이 아니라 ( 참되신 ) 아버지의 방법을 의지함으로 오직 아버지의 말씀만 전하였습니다. 아버지의 방법은 이것이었습니다. ( 인자 )가 들려질 때에 그들은 비로소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보내신자요 오직 아버지의 뜻에 따라 모든 것을 행하셨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십자가는 ( 아버지 )와 아들이 함께 계심을 더욱 나타내는 것이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신성과 정체성을 증명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너희에게 대하여 말하고 판단할 것이 많으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말씀만 대언하고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일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능력의 심판을 통해서가 아니라 죄인들을 위한 희생을 통해서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드러내고자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러한 아버지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하셨습니다.

'너희는 인자를 든 후에'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후에 그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라는 말씀하십니다. 



만약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의심한다면, 십자가에서 묵상하세요! 

여러분의 친구가 의심하면 당신의 삶을 통해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여주세요.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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