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요 4:27 – 42)

4장에서 나타난, 새로운 예배 이외의 또 다른 주제는 인간 내면의 목마름과 굶주림입니다. 내면의 목마름은 주님이 주시는 생수로 해갈이 되지만 굶주림은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요?

👉 요한복음 4:27 - 42


Q1. 그 여인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알게 되자 무엇을 했나요? 

그녀는 자신의 물동이를 내려놓고 마을로 들어가서 전도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마을 사람들에게 가서 전도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가 메시아이심을 듣자마자 자발적으로 마을로 들어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녀는 환영받지 못하는 여인이었지만 지금은 전도자가 된 것입니다.


Q2. 예수님의 음식은 무엇이었습니까? (34)

예수님을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인이 원하는 바를 성취함으로써 만족을 얻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심으로 만족을 얻으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에 의해서만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으므로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다는 것은 그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그의 영은 살고 만족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보내신 이의 일’이 아니라 ‘뜻을 행하며’ 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기계적으로 어떤 작업명령들을 수행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모든 일을 행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구했습니다. 열방을 복주시려는 하나님의 일이 완성될때까지 주님은 일하십니다.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셨고 죽기까지 복종하시어 십자가에서는 ‘다 이루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명하시고 교회에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Q3. “(               ) 자가 이미 삯도 받고 (          )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         ) 자와 (             ) 자가 함께 (             ) 하려 함이라”  

“(  거두는   ) 자가 이미 삯도 받고 (  영생  )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 뿌리는 ) 자와 ( 거두는  ) 자가 함께 ( 즐거워하게  ) 하려 함이라”

36절, 37절, 38절에서 반복적으로 말씀하는 부분이 이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하나님의 메시지를 선포했던 세례요한을 포함한 모든 구약의 선지자들은 뿌리는 자였습니다. 그리고 거두는 자는 제자들과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교회 역사 속에서 계속되어 온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두 그룹 모두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일했습니다. 구약의 일꾼들은 수고했지만 부활의 첫열매도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단지 복음을 선포함으로써 추수를 즐깁니다. 그러므로 추수를 통해 얻는 기쁨과 축복의 공을 먼저 수고한 그들에게 돌려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이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앞에서 수고한 모든 하나님나라 일꾼들의 피와 땀을 의미없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 됩니다.


Q4. 이것은 그 사마리아 마을 사람들이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      ) 듣고 그가 참으로 (        )의 구주신줄 앎이라”

"우리가 믿는 것은 (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 친히 ) 듣고 그가 참으로 ( 세상 )의 구주신줄 앎이라”

우리는 처음에 다른 사람의 전도와 증언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면 우리 스스로 확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종교적 왕따였던 사마리아인들이 먼저 예수가 ‘세상의 구주’라고 고백했음에 주목하십시오.



우리는 어떻게 내면의 목마름과 배고픔을 해소할 수 있을까요? 주님께 생수를 달라고 구하십시오. 성령이 임하시면 더이상 불안하지 않고 평안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주님을 위해 일하는 것은 여러분의 삶을 의미있는 것으로 만들고 참된 만족감으로 내면을 채울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여러분의 정체성과 삶의 의미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내면을 채울 것을 찾아 이리저리 결코 방황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땅을 바라보는 자는 궁전에 살아도 흙으로 돌아갈 육신을 위한 삶이니 허무한 것이요. 하늘을 바라보는 자는 흙집에 살아도 영원에 잇대어 있으니 하나의 숨결도 의미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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