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죄용서의 복음, 그러나 싫어하는 사람도 (막 2:1 – 17)

세상이 예수님을 반기는 듯했지만, 모두가 그를 반기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죄용서의 메시지를 반기지 않았습니다.

👉 마가복음 2:1 - 17

그들이 중풍 환자를 들것채로 예수님앞에 내릴때에, 예수께서 그들의 (       )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                                 )” 라고 하셨습니다.

믿음, 아이야 네 죄들이 사함받았느니라

“그들의 믿음”은 무엇일까요? 그들은 어찌하든지 그를 예수님께 데려가면 내치지 아니하시고 치유해 주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능력과 너그러움을 믿었습니다.

"소자" 원어를 직역하면 '어린 아이' 입니다.

중풍 환자의 믿음도 '그들의 믿음'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중풍병자가 친구들의 믿음으로 용서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입니다. 

'네 죄가 사함받았다.' 이로 인해 우리가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중풍병자의 그 병이 그의 죄로 인해 왔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은 중풍자에게 '치유' 대신 '네 죄가 사함받았다'고 말씀하셨을까요? (10)

인자가 땅에서 죄하사는 권세가 있는 줄 알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이 치유의 상황을 빌어서 복음을 선포하십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땅에서, 죽은 후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기 전에 말입니다. 지금 죄를 용서받을 수 있음을 말합니다. 

어떤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주님께 나아가는 것, 주님을 구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실패의 모습 그대로 주님께 나아가면, (그것은 우리의 죄를 인정하는 마음을 포함합니다), 주님께서는 먼저 죄를 용서해주시고 그 다음에 우리을 온전케 하실 것입니다.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       )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영광, 도무지

그의 죄가 용서받았음은 그의 치유를 통해 확인되었습니다. 

"이런 일을 도무지” 선지자나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 많은 치유의 기적이 있었지만, 죄를 용서한다고 선언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들이 놀란 것은 치유가 아니라, 죄용서를 선포하고 치유로써 그것을 확증하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무엇입니까? (17)

그는 죄인들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죄인들을 부르러 오신 것이 여러분에 얼마나 좋은 소식입니까? 

만약 스스로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의롭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고 정죄하기 쉽습니다. 우리는 때로 다른 사람의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에 대해 별 관심을 가지지 않기도 합니다. 내가 그들보다 더 많은 성경지식과 더 깊은 영성을 유지하길 원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세상은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기에 죄 용서의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죄용서의 복음을 좋아한다면 다른 사람도 용서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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