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믿음은 예수님의 능력을 붙잡는 우리의 손입니다 (막 5:21 – 43)

혈루증 여인을 치유하고 야이로의 딸을 살리는 장면은 우리에게 예수님께 나아가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믿음임을 보여줍니다.

👉 마가복음 5:21 - 43

야이로가 예수님께 한 말(23절)과 백부장이 예수님께 한 말(마태 8:8 – 11)을 비교해보십시오. 유대인의 회당 지도자였던 야이로는 뭐라고 했어야 했을까요? 

“말씀만 하십시오. 그러면 제 딸이 낫겠습니다” 혹은 “제 딸을 고쳐주십시오”

그는 딸을 낫게 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오셔서 손을 얹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능력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그 여인은 생각하길, ‘내가 (               ) 나음을 얻으리라’ 고 했습니다. 그녀가 예수뒤로 다가가 옷을 만졌을때 그의 혈루 근원이 (      ) 마르고 나은 줄을 몸에 깨달았습니다.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곧 (즉시)

그녀는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써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그녀에게는 아무 소망이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녀는 예수님께서 그 마을에 오셨다는 말을 듣고 예수님께 나아가길 원했지만 혈루병으로 인한 부정함으로 인해서 공개적으로 주님께 나아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 여인이 치유되는 것은 예수님의 의지와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본문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정말 주님이 몰랐는지, 주님의 의지와 상관없이 된 것인지를 우리는 논할 필요는 없습니다. 본문의 표현을 그대로 받는 것이지요) 그 여인이 치유받은 것은 예수님께서 미리 허락하셨거나 약속하신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그녀의 믿음의 결단으로 치유의 능력이 나타난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마 11:12)



예수님께서 무리들을 둘러보시며 그녀를 앞으로 나오도록 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길, “딸아 네 (       )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       )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온전할지어다)”

믿음, 평안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옷을 만지고 예수님과 접촉했지만 간절한 마음과 믿음으로 나아온 이 여인만 치유의 기적을 경험합니다.



딸의 죽음을 들은 야이로에게 왜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라고 하셨을까요? (힌트: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라고 말한 것은 믿음이 없는 자의 말입니다.)

ANS: 아이가 죽은 상황이라도 예수님께는 방법이 있음을 야이로가 믿기를 원하십니다.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야이로는 이제는 늦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 어떤 것도 예수님께는 너무 어렵거나 너무 늦은 것이 없습니다. 주님께 가져오세요. 이것이 바로 주님이 원하시는 신앙입니다.



사람들이 울며 통곡하는 것을 보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       )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      ) 하시니.” 주님께서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           ) 하시니 이는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ANS: 우느냐, 잔다, 달리다굼

그 당시에는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와서 울어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낙담해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왜 낙담하느냐 ? 지금 네가 처한 문제는 내게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하십니다.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이것은 창조주의 선포입니다. 모든 생명체에게 생명을 주시고 아담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신 그분이 소녀의 손을 잡고 선포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선포는 죽은 자를 일으켜 세우는 능력이 있습니다.

여기서도 예수님은 이 유대인 마을에서 치유의 소식을 퍼뜨리는 것을 금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믿음은 여러분이 처한 삶의 현장으로 그분의 능력을 임하게 하는 통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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