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씨뿌리는 비유: 드러나고 숨겨짐 (막 4:1 – 20)

모든 사람이 복음을 환영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그들 중 일부는 심지어 거부하며 예수님을 대적했을까요? 왜 가까운 가족들조차 예수님을 믿지 않았을까요? 4장 장에서 예수님은 그 이유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 마가복음 4:1 - 20

무리를 대할때에는 비유로써 가르치시고 (1-9) 따로 있을때에는 제자들이 요청하자 그 비유를 설명해주십니다. (10-20).

(          )에 떨어진 씨앗들은 새들이 먹어 치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거나 들었을때에 그 말씀을 마음속에 간직하도록 애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     )이 그 말씀을 가져갈 것입니다.

길가, 사탄

하나님의 말씀과 설교 메시지를 가슴에 새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열심히 빼앗으려 하는 존재로 인해서 우리는 잊어버릴 것입니다.



(          )에 떨어진 씨앗은 흙이 (       ) 아니하므로 싹이 곧 나옵니다. 그런데 말씀을 진지한 마음으로 묵상하고 마음에 뿌리내리도록 하지도 않습니다. 감정에 치우쳐 복음을 가볍게 받아들일 뿐입니다. 이런 사람은 예수님 때문에 (            )이 오면 바로 넘어집니다.

돌밭, 깊지, 환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속 깊이 새기고 삶 속에 뿌리내리게 해야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태양은 식물에 두 가지 상반된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뿌리가 깊은 식물에게는 생명을 주지만 뿌리가 없는 식물은 말라죽게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오는 박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단단히 뿌리내릴 때 박해는 우리의 믿음을 강하게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감정에만 의존할 때에는 박해가 오면 우리는 믿음을 떠나게 됩니다. 



(          )에 떨어진 씨앗은 그래도 자라납니다. 하지만 (        ) 또한 자라나서 그것을 (씨앗에 자라난 식물) 막습니다.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       )과 기타 (       )이 들어와 (      )을 질식케 함으로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합니다.

가시밭, 가시, 유혹, 욕심, 말씀

씨를 뿌릴 때는 가시가 별로 없었거나 작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가시도 자란다는 것을 주목하세요. 

삶에 대한 걱정과 세상에서의 성공과 부귀에 대한 욕망이 있으면, 그것들이 점점 커져서 여러분의 영적 성장을 방해할 것입니다. 마음속에 남아있는 작은 욕망이라 할지라도 성령의 능력으로 죽이지 아니하면 언젠가 자라나서 여러분의 첫사랑과 열정을 식어버리게 할 것입니다. 

“세상의 염려” 염려라는 단어의 원어는 ‘마음이 나누어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재물의 유혹" 재물과 관련한 모든 종류의 거짓말과 속임수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재물은 나를 행복하게 할 것이다. 재물이 있으면 하나님의 사역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내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재물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등등

“기타 욕심” 이것 저것을 하면서 바쁜 삶을 사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또한 앞에서 언급한 세상의 염려나 혹은 돈을 벌기 위해 애쓰는 것도 그 자체로는 죄가 아닙니다. 문제는 그런것들로 인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시간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가시밭에서 자란 것은 열매가 없다는 것만 빼고는 좋은 밭에서 자란 것과 겉보기에는 똑 같습니다. 제 자신의 삶이 그런 열매없는 자가 될까 두렵습니다.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은 열매를 맺습니다. 그들은 (       )을 듣고 또한 삶에 받아들임으로 열매를 풍성히 맺습니다.

말씀

네가지 밭의 비유를 통해서 볼때 우리 삶의 열매는 전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100배의 결실을 맺은 받이 30배의 결실을 맺은 밭보다 더 좋은 밭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30배, 60배, 100배라고 반복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열매를 맺었느냐가 아니라 말씀따라 살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좋은  밭입니다.

이 비유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 반응하는 우리의 마음을 네가지 밭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삶속에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좋은 밭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왜 그들을 비유로 가르치십니까? (9, 11 – 12)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밝히시면서 동시에 감추시기 위해서.

이사야 6장 9~10절에 인용된 12절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회개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까? 하나님은 왜 그들을 눈이 멀고 우둔하게 만드려고 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피상적인 회개가 아니라 자신에게는 아무런 소망이 없음을 처절히 고백하는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의 회개를 원하셨습니다. 내 속에 조금이라도 선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다음에는 잘 할 수 있을거야’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구원을 갈망하지 않기 때문이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죄악이 드러나도록 그들의 영적 눈을 어둡게 하십니다. 어떻게요? 그들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을 때까지 그들은 어리석게 되어 결국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는 실수와 죄악을 저지른 것입니다. 그리함으로 그들의 죄성이 드러난 것입니다. 

드러내고 숨기시는, 서로 모순되어 보이는 두가지 목적이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오직 제자들에게만 드러내시고 밖의 사람들에게는 숨기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겸손하고 정직한 마음으로 말씀 앞에 서지 않는 한 그분의 메시지는 숨겨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그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도록 하십니까?  

  • 그는 우리의 마음이 준비되지 않는 한 우리는 그 지식을 우리의 악한 욕심을 채우기 위해 사용할 것입니다. 예) 성경지식으로 다른사람을 정죄하고 자기자신의 의를 변호하는 것 
  • 또한, 하나님께서는 인격적 만남을 통해서 진리가 선포되고 이해되길 원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진리는 왜곡되고 사람들을 이단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에는 오묘한 지혜가 숨어있습니다.

  • 십자가의 때까지 하나님의 구원 섭리는 숨겨져 있었습니다.
  • 이방인들의 때까지 그들의 마음을 굳게 하십니다.
  • 열방의 부흥의 때까지 기존교회는 신음할 것입니다.
  • 잃어버린 하나를 찾기까지 아흔 아홉은 들판에 남겨질 것입니다.

모든 것의 주권자되신 그분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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