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율법을 지키는 것과 예수님을 따르는 것의 차이 (막 10: 1 - 30)

 이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거부함으로써 이제 십자가에 예수님을 못박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왜 예수님의 메시지를 이해할 수 없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십니다. 그들은 율법과 자기의에 집착했습니다.

👉 마가복음 10:1 - 30

질문 1. 이혼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모세는 그것을 허락했을까요? 

우리의 완악한 마음때문에 더 큰 악을 막기 위해서 

이혼이 하나님의 뜻은 아니지만, 아내와 정말 이혼하길 원하면 아내에게 이혼 증명서를 주어 다른 남자와 결혼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아내와 이혼하는 것도 나쁘지만, 증명서를 주지 않고 내쫒음으로 다른 남자와 결혼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더 악합니다. 그 당시에 여성이 돈을 벌 수 있는 기획는 매우 제한적이어서 남편이 없거나 아들이 없는 여인은 먹고 살기가 어려웠습니다.

율법을 지켰다고 해서 하나님의 뜻을 따랐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법은 양우리의 울타리처럼 우리가 주님을 떠나 너무 멀리가지 않도록 하는 보호막입니다. 우리가 따라야 할 최소한의 요구사항이라는 것입니다. 



Q2. "내가 (        )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           )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진실로, 어린아이

득실을 따지지 말고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시기 바랍니다. 



Q3. (17 – 22) 이 구절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율법은 우리에게 영생을 약속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이 모든 율법을 어려서부터 다 지켰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 그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요? 

전심으로 율법을 지켜왔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것에 대해서는 꺼려합니다. 

율법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 분명하게 말합니다. 우리의 헌신과 희생의 경계가 명확하고 한정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한정되지 않은 헌신을 요구합니다. 언제까지 그리고 얼마나 헌신해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돈을 기부하는 것은 우리의 과거를 드리는 것이고, 율법을 지키는 것은 현재를 드리는 것이지만, 제자로 헌신하는 것은 우리의 미래를 포함한 모든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율법에서 약속하는 것은 지상의 복이지 영원한 복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찾아와 영생을 얻는 방법에 대해 예수님의 답을 구했습니다. 

"선한 선생님, 영생을 얻으려면 제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 사람은 무엇을 함으로써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외에는 선한 분이 없다'는 예수님의 대답은 그의 접근법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합니다. 예수님은 '영생을 얻을 만큼 선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이러합니다. '나를 따라오라. 그러면 영생을 얻게 될 것이다.'



Q4. '영생을 어떻게 얻느냐'는 부자의 물음에 23~31절이 세마디로 답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여러분에게 많은 (          )은 짐이 됩니다 (23).  구원은 여러분이 쟁취할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            ) 의 주권에 달린 것입니다 (26 – 27).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를때, 여러분은 현세에 있어 그 모든 것을 (       )를 겸하여 받게 되고, 내세에 (      )을 받을 것입니다 (28~30)

재물, 하나님, 박해, 영생

그 사람은 너무 부자였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21) 돈 뿐만 아니라 어떤 것이든 우리의 자존감을 채워주는 그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을 따르는데 있어서 우리로 하여금 머뭇거리게 합니다.

그 부자는 자신이 무엇을 행함으로 원을 얻을 방법이 없을까 하고 찾아온 것입니다.그러나 예수께서 대답하시길,  `네의 행함으로 구원을 보장할 방법은 없다. 네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든 것을 제쳐두고 나를 따르는 것뿐이다. 그러면 영생을 얻을 것이다’

‘현세에 있어 … 백배나 받고’ 주님을 따르는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보상은 영적인 복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가족을 만나게 되고 교회 공동체와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공급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우리의 영적 성숙은 얼마나 오래 주님을 섬겼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전심으로 (때로는 급진적일 만큼) 주님을 따랐느냐 하는 것입니다.




영생을 원하십니까? 율법은 우리에게 영생을 약속한 것이 아니란 점을 기억하십시오. 전심으로 주님을 따르시길 바랍니다. 그분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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