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제자들의 깨닫지 못하는 마음 (5000명을 먹이심 & 물위를 걸으심) (막 6:30 – 52)

고향사람들은 예수님을 배척하고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선지자중의 하나로 이해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이제 제자들을 훈련시키시는 데에 집중하십니다. 하지만 제자들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 마가복음 6:30 - 56

그들이 전도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너희는 (나와 함께)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자”

사역을 한 후에 영적 에너지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주님과 함께하는 휴식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흥미롭게도, 마가는 열두 명을 보내는 장면과 돌아오는 장면사이에 세례요한의 죽음을 기록했습니다. 이러한 배치를 통해 마가는 예수님과 그의 사도들이 당할 박해를 암시하고 싶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세례 요한 역시 회개를 선포하는 사도(보내심을 받은 자)였고, 그 메시지때문에 죽임을 당했던 것입니다.

누가복음에서 72명이 전도여행에서 돌아오는 장면에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사역의 결과물보다 자신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것으로 더 기뻐하라고 하십니다 (누가복음 10:17-20).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            )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           )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가르치시더라

그들은 치유를 갈망했지만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말씀이었습니다. 그들은 치유와 양식을 얻고자 주님께 몰려들었습니다. 그래서 주님보시기에 목자없는 양같다고 하신 것입니다. 양은 자신의 필요를 모릅니다.



제자들이 주님께 말했습니다. "(             )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먹게 하소서.”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         ) 먹을 것을 주어라”

예수께서 보리떡 (     )개와 물고기 (    )마리를 택하사 (        ) 하시고 제자들에게 주어서 사람들에게 (       ) 주게 하셨습니다. 

다 (       ) 먹고 남은 조적을 (      ) 바구니에 차게 가두었습니다.


변 👉

제자들이 주님께 말했습니다. "(  무리를 보내어   )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먹게 하소서.”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 너희가 ) 먹을 것을 주어라”

우리는 어떤 문제나 상황에 말려들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생각하길, ‘그들이 직접 가서 사먹는다면 얼마나 효율적인가’ 라고 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말씀을 함께 들은 후에 함께 식사하는 것이 최선인 줄 압니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므로 차선을 택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방법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주님은 우리가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고 우리 삶을 개입하길 원하십니다. 

예수께서 보리떡 ( 다섯 )개와 물고기 ( )마리를 택하사 ( 축사 ) 하시고 제자들에게 주어서 사람들에게 ( 나누어 ) 주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한정된 자원으로 예수님은 크신 일을 하십니다. 예수님이 백성들에게 직접 나누주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을 통해서 주셨음을 주목하십시오.  

다 ( 배불리  ) 먹고 남은 조각을 ( 열두 ) 바구니에 차게 가두었습니다.

예수님의 뜻을 따를 때 모두가 만족하고 행복합니다. 주님의 방법은 우리에게 최선의 것을 제공합니다.



예수께서 (      )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      ) 하러 산으로 가셨습니다.

즉시, 기도

많은 무리가 주님의 능력을 경험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 합니다 (요 6장) 제자들은 그러한 감격과 영광속에 더 머무르길 원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분위기에 빠짐으로 인해 제자들의 영적 눈이 어두워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주님도 또한 혼자 산으로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물 위를 걷는 것을 보고 왜 두려웠을까요?

그들은 그가 유령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 마음은 둔하여 졌음이러라 (굳어졌음이러라).' 

엘리사는 스무개의 빵으로 백명을 먹이는 기적을 행합니다 (왕하 4:42~44). 아마도 제자들은 예수님이 엘리사처럼 혹은 그보다 힘센 선지자일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의 마음이 둔하여 졌다고 말합니다. 마음이 둔하면 새로운 계시가 주어질때 잘 깨닫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이미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암시하셨습니다. 물론 직접적으로 말씀하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하시는 죄용서의 권한이 있음을 보이셨고 (2:5 – 11) 또한 스스로 안식일의 주인으로 선포하시면서(2:28) 안식일 계명을 만드신 하나님과 동등되심을 암시하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이 설마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인정하기를 주저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약속하신 것들에 대해 소극적이 아닌 적극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무엇이든 구하면 들어주시고, 주님이 하신 일보다 더 큰일도 성령의 능력으로 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안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53~ 56절에서 사람들은 예수님께 몰려들지만 말씀보다는 치유를 위해 나아옵니다. 이러한 군중들의 모습과 제자들의 무지함은 묘한 일치를 이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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